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탈린그라드 전투 (문단 편집) === 이후 소련 육군에 끼친 영향 === 소련군의 경우에도 여러가지 값진 경험을 하게 되었다. 소련군의 대규모 병력은 2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독일 6군을 포위하면서 기나긴 동계 작전 경험을 하게 되었고 소련군의 동계 전술은 이때를 기점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이 외에도 현대적인 시가전 교리를 확실하게 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실리 추이코프]]는 전투 초기에 화력이 우세한 독일군의 이점을 감소시키기 위해 아군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건물에 숨어 적이 올때까지 기다리다가 적이 가까이 오면 기습하는, 백병전에 가까운 근접전투를 벌이는 방식을 시도했다. 이는 당연히 소련군이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전술이었지만, 강력한 독일 전차와 포병의 화력에 대응조차 못하고 병력을 손실하는 것 보단 보병 하나라도 교환하는게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기에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전투 후기에 전선이 안정화되고 소련군에 물자와 인력이 보충되기 시작하자, 소련군은 수류탄과 기관단총, 화염병과 화염방사기 같은 근접전에서 아주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게 되었다. 단순히 적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때까지 버티다가 싸우는 것이 아닌, 먼저 적이 점거한 건물을 소탕하거나 적의 거점을 공략하는 보다 공세적인 전술을 펼칠 수 있게 되었고, 인력을 보존하기 위해 적이 있는 건물(또는 있을법한 건물)에 무리하게 진입하기 보다는 수틀리면 폭약과 수류탄으로 방 째로 날려버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전에서 인질이나 민간인이 없는것이 분명한 건물을 소탕하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현대 미군 교리에도 민간인, 인질이 없는 적 점령 건물을 상대할 땐 보병을 진입시키지 말고 유탄이나 로켓, 장갑차 등의 화력을 동원하여 원거리에서 제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굳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수류탄과 섬광탄 등의 폭발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기만 작전술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게 되는 배경이기도 했다. 소련군은 독일군을 철저히 기만했고 그 덕에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을 포위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소련군은 기만과 가짜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대표적으로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남부 전선에 대한 지속적인 공세를 통해 독일군의 관심이 남부에 쏠리게 만들었고 가짜 사단 편성 및 거짓 무선, 병력의 위장 배치를 통해 소련군의 주공이 남부인 것처럼 위장하게 만들었고 독일 기갑부대의 주력이 남부집단군으로 몰리게 되면서 중부집단군은 사실상 알보병만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전선 곳곳이 텅텅 비어버렸다. 결국 소련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얻은 기만전의 경험을 토대로 독일 육군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중부집단군을 문자 그대로 분쇄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들의 경험도 점점 쌓이게 되었고 장성들의 종심 작전능력도 향상되었다. 대숙청의 병폐로 인해 불구가 되었던 소련군의 종심작전능력은 이때를 기점으로 향상된 셈이고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장병들은 경험이 많이 쌓인 베테랑이기에 이 생존장병들은 소련군의 큰 전력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